제레미 린 (Jeremy Lin)으로 인해 중국에서 핍박 받는 기독교인들이 용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NBA에서 가장 주목 받는 스타인 제레미 린은 대만계 2세로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는 인터뷰를 때나 기자회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표현을 주저 없이 한다. 그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은 NFL 티보와 함께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그의 믿음은 중국에 있는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린의 크리스천 신앙이 중국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크리스천들 사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중국 정부는 린에 관한 140 개의 블로그 메시지 그의 신앙에 대한 소개를 1,500개로 제한할 정도로 검열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면서 중국 크리스천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 것이다.

린의 어머니는 중국 대륙 출신으로 1940 내전 당시 대만으로 피난을 갔던 인물이고 그의 고조 할아버지는 미국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린은 농구 선수로서 어려움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휴스턴 로키츠를 거치면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방출을 당했다. 그때 그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그는 특별히 로마서 828절을 암송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린은 미래에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는 특별히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자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 하버드대 재학시절 아시안 아메리칸 크리스천 그룹의 리더이기도 했던 린은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렸더니 마음에 자유를 얻었다 NBA에서의 성공의 이유를 하나님께 돌렸다. [UTDTimes.com]


제레미 린(Jeremy Shu How Lin) / 농구선수
출생 1988년 08월 82일
신체 키191cm, 체중91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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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쿼터백'하면 마이클 빅, 빈스 영 등 흑인 쿼터백이 생각난다. '달리는 쿼터백'은 주로 흑인 선수들이다. 흑인 쿼터백이 아닌 선수 중 꾸준히 러싱 경기를 이끄는 쿼터백은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식 축구 역사에서 '달리는 백인 쿼터백'은 거의 없었다. 몇 년 동안 편견을 완전히 없앤 선수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팀 티보. 티보는 플로리다대에서 4년 동안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2007년) 및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 후보 등재 2회 등 화려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티보는 1학년 때부터 4학년 쿼터백인 크리스 리크와 '플래툰 시스템'에서 출전을 한 바 있는데 당시 티보는 소속 학교의 우승에 공을 세운 바 있다.

4학년이었던 리크가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한 선수였기 때문에 러싱 공격이 필요할 때면 교체돼 뛰었던 티보는 러싱 터치다운(TD)을 무려 8개나 기록했다. 리크가 졸업한 후 주전 쿼터백 자리를 꿰어찬 티보는 이후 3년 동안 각종 쿼터백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2009시즌에 생애 러싱 터치다운 51개째를 기록해 컨퍼런스 기록을 경신했다. 러싱 터치다운은 보통 러닝백이 기록하기 마련인데 티보는 쿼터백으로서 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티보가 워낙 잘 달리는 선수라 상대팀 수비수들이 티보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공격수는 자연스럽게 오픈 공간을 만들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전진을 할 수 있었다. 티보의 존재로 플로리다는 4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낼 수밖에 없었다.


티보는 백인이지만 힘이 넘치는 선수였다
. 그는 "역기 들기(bench press)에서 학교 기록을 세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몸 만들기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플로리다의 공격 코디네이터인 댄 멀른은 "티보는 라인배커가 될 선수였는데 쿼터백이 됐다"고 소개했을 정도다. 어번 마이어 플로리다대 감독은 티보를 "플로리다 공격의 스파크플러그(점화선)"라고 극찬했다.

필리핀 기독교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났던 티보는 케이블 방송인 ESPN-TV '선택된 자(The Chosen One)'라는 프로에 출연해 인기가 급상승한 바 있다. 티보는 방학이 되면 아시아를 방문해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필리핀에서 플로리다대 인기는 높았다.  

그의 활기 넘치는 경기 운영 방식은 많은 대학 풋볼 팬들을 매료시켰는데 풋볼 전문가들은 "그래도 패싱은 시원찮다"며 그의 능력을 평가절하한 바 있다. 그러나 티보는 고교시절부터 패스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플로리다주 고교 풋볼의 모든 패싱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티보는 달리면서 패스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티보가 공을 들고 달릴 때 상대 수비수들은 3가지 공격 방식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 일단 티보가 직접 공을 들고 달리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고 긴 패스를 주의해야 한다. 티보는 긴 패스를 잘하는 쿼터백이다. 또한 러닝백에 공을 건네주는 것도 조심해야 했는데 이유는 플로리다의 러닝백 자리에 좋은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플로리다가 한 경기에 50점 이상 기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티보가 공격의 스파크플러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보는 고등학교 때까지 홈스쿨에서 공부했다. 즉 집을 학교로 하는 제도에 따라 공부를 했던 것. 그러나 풋볼을 하고 싶어서 공부는 집에서 하고 풋볼은 인근 고등학교에서 했다. 처음에는 이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플로리다주에서는 그것이 인정됐다. 그래서 티보는 홈스쿨을 하면서 팀 스포츠를 하길 원하는 아이들에게 표본이 된 선수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다른 주(State)에서도 흥미를 보였고 소위 '팀 티보 법안'이 몇몇 주에서 통과되거나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팀 티보 법안'은 홈스쿨에 있는 아이들이 인근 학교에서 운동 선수로 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티보는 홈스쿨 아이들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낙태 반대에 앞장 섰다. 티보는 2010년 슈퍼보울 광고에 출연해 낙태 반대의 뜻을 밝히게 된다. 티보가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 팸(Pam)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의사의 낙태권고를 받았다. 사산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의사는 경고했다. 팸은 그러나 끝까지 아이를 지켰고 건강한 티보가 태어났다. 낙태 반대자들에게는 완벽한 예가 되었기에 티보의 이야기는 미국인들 사이에 회자됐다.

티보는 2010년 4월에 열린 NFL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렸다. 티보는 201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5번으로 덴버 브롱코스에 지명됐다. 첫 시즌에 그는 9경기에 출전했고 3경기에 주전으로 나서 1승2패를 기록했다. 총 82차례 패스를 시도해 41차례 명중시켰으며 쿼터백 레이팅 82.1을 기록했다. 그는 러싱야드로는 227야드를 기록했고 패싱 터치다운(5개)보다 더 많은 6개의 러싱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브롱코스는 시즌을 4승12패로 마감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티보는 2011년 시즌을 카일 오튼의 백업 쿼터백으로 시작했는데 오튼이 1승4패로 부진하자 일약 주전 쿼터백으로 올라서 9경기에 주전으로 출전, 7승2패를 기록했다. 브롱코스는 시즌 8승8패로 5할 승률을 기록했지만 디비전 1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한편, 티보는 대학시절부터 눈밑에 그리는 아이 페인트(eye paint)로 성경 구절을 넣었는데, 특히 요한복음 3장16절(John 3:16)이라고 써 넣었을 때 구글 검색에서는 무려 9천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놀라운 반응이 일었다. 하지만 NFL에서는 그것을 할 수 없었다. NFL에서는 아이페인트로 메시지를 쓰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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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존경했던 인물을 한 명을 꼽으라면 존 우든(John Wooden) 코치입니다. 우든 코치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90년대의 마이클 조던처럼 추앙되던 농구 지도자입니다.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UCLA 남자 농구팀을 10차례나 NCAA 챔피언으로 이끈 바 있습니다.

특히 1967년부터 1973년까지 UCLA를 7년 연속 챔피언으로 이끈 것은 대학농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UCLA는 우든 감독이 재직했던 시절 4차례나 무패 시즌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88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10년 10월 100세를 눈앞에 두었던 우든 코치는 같은해 5월 26일 탈수증세로 입원했고 6월 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든 코치는 은퇴 후 3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그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우든 코치가 만든 '성공의 피라미드(the Pyramid of Success)'는 지금도 학교 교사들이 리더십을 가르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성공' 개념은 다른 지도자들과 달랐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는 '당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후에 얻은 자족(self-satisfaction)의 결과로 갖게 된 마음의 평화'입니다. 돈 명예 파워가 성공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은퇴할 무렵 프로농구(NBA) 구단으로부터 연봉 35만 달러(70년대에는 엄청난 금액이었음)의 감독직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할 수 있었다. 저는 90년대 중반 그의 집을 방문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의 집은 너무나도 평범해 깜짝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LA 북부의 엔시노라는 곳에 거주했던 우든 감독은 "죽은 아내와 함께 살던 곳이라 떠날 수가 없다"며 작은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그는 '성공'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공의 피라미드'의 저작권 등록으로 돈을 벌자는 제의도 그는 단칼에 거절하고 이 내용을 인쇄해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그가 색다른 리더십을 보였던 근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10차례 NCAA 챔피언이 됐을 때도 88연승을 달렸을 때도 그의 주머니에는 항상 나무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경기 중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는 십자가를 만지며 잠시 묵상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긴장과 스트레스의 상황에서 그는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십자가가 마술적인 힘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십자가를 만지는 것은 그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재확인이었던 것입니다. 승리를 향한 기도도 아니고 그의 별명처럼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디에 있든 어떤 순간에서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그는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도자는 따르는 자의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훈련하고 개발하도록 돕는 자이며 이는 주님의 소명에 걸맞는 성품을 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로서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최선을 다했고 그로 인해 자족했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성공한 자였습니다.

아래 내용은 90년대 당시 인터뷰 기사입니다.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UCLA 로고가 아니다. 바로 농구팀이다. UCLA 농구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일까? 그는 존 우든(John Wooden)이다. 미국 대학 농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대학농구(NCAA)의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든 감독은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UCLA를 대학 최강팀으로 이끈 그야 말로 '전설(Legend)'의 감독이다. 대학 농구 매니아와 올드 타이머들의 기억 속에는 그가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정도다.

그의 코치경력은 너무나 화려하다. NCAA 10회 우승, NCAA 7년 연속 우승, NCAA 최다연승(88연승)등 수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 기 록들은 영원토록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든은 자신이 세운 기록만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많은 감독, 코치들이 연구하는 그의 농구 철학은 기독교적인 신앙이 기본이 됐다.

우든 감독은 (인터뷰 당시) 88세로 인생의 황혼기 마저 훨씬 넘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다른 노인처럼 잔병이 많고 관절염으로 고생(의자에서 일어날 때 반동을 이용해서 일어날 정도)을 하고 있지만 나이에 비해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이렇게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어 주중에는 강연을 주로 하고 남는 시간에는 독서와 집필에 몰두한다. 주말에는 가족(자녀2, 손자 7명, 증손자 10 명)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아내는 12년 전 세상을 떠났다.)

UCLA농구팀이 경기를 할 때면 꼭 참석해 현역 코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설명해 준다. 기자는 다른 것 보다 먼저 그의 인생철학을 질문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꼼꼼하게 설명을 했다.

평생동안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랑하며 겸손하게 사는 것이 나의 인생 철학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화와 사랑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지요. 이런 철학은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주신 7가지의 신조를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생겨났습니다 ”

그가 말하는 7가지 신조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 번째, 너 자신에 진실해라. 두 번째, 하루 하루의 삶을 멋지게 살아라. 세 번째, 이웃을 도와라. 네 번째, 좋은 책을 많이 읽고 특히 성경책을 벗삼아 정독하라. 다섯 번째, 친구와의 관계를 예술 작품처럼 생각하고 아름답게 가꿔라. 여섯 번째, 힘든 날을 대비해 준비를 해둬라. 일곱 번째, 나에게 내려진 하늘의 축복에 대해 감사해라.



“저는 아버지께서 주신 이 7가지 신조를 소중히 간직하며 이것에 맞게 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든은 이 7가지 신조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 그는 이 7가지를 발전 시켜 우든 스타일의‘성공을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이 피라미드는 인생에서 성공을 위한 그의 노하우를 정리한 것인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각 항목들이 종합되어 기도로써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피라미드 차트는 성공한 많은 스포츠 스타, 코치,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현역 감독 시절 성경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손바닥만한 성경을 들고 어려움에 처해지면 말씀에 의지했고 틈만 나면 '매일의 말씀(Daily Word)' '다락방(Upper room)' 같은 신앙지를 읽었다고 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우울해질 때 나쁜 일에 대한 유혹을 받았을 때 항상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에서 집사로서 오랫동안 봉사했다. 그곳에서 신앙생활이 성숙되어 갔는데 당시 담임 목사이던 웨일즈 스미스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신앙적인 도전을 많이 주었다.

우든은 이 밖에 프랭크 데이빗슨 목사에게서 신앙 지도를 받았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데이빗슨 목사로부터 받은 작은 십자가는 그가 극도로 긴장된 순간마다 주머니에 넣고 마음의 평화를 간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농구 경기가 막판 숨막히는 순간에는 감독들은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선수들은 감독에게 의지하면 되지만요. 저는 그럴 때마다 십자가를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내 감정을 잘 컨트롤할 수 있게 해달라구요. 그러면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필자는“전설의 감독이라고 불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해 우든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내 자신을 한 번도 전설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단지 좋은 성적을 냈던 농구팀의 좋은 코치, 좋은 교육자로 기억되길 원합니다. 전설적인 코치가 아닌 어린 선수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도운 좋은 코치로 기억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저의 목표는 젊은 선수들을 훌륭한 농구 선수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한 단체의 도움이 되는 일원, 나아가서는 훌륭한 시민이 되도록 교육하고 그들이 나이 들어서의 인생을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기본적인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그의 제자들은 프로 농구에 진출을 하지 않은 경우 의사, 목사, 공무원 등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우든의 제자는 95% 이상이 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삶은 화려한 생활보다 더 길기 때문에 농구를 통해 다른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낳은 결과였다.

그는 현역 감독 시절 선수들과 ‘부자 관계(Father-Son Relationship)’를 유지했다. 우든은 “코치는 조련사·승부사이기 이전에 부모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부하·선수·직원을 관리한다면 그들의 감정적인것 · 정신적인 것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눠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 대학 농구 코치들이 연간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것은 교육자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개 농구 코치가 학장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직책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라는 것.

실제 그도 현역 시절 나이키와 같은 신발 회사로부터 거액을 받고 선수들에게 그 신발을 신도록 하는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삶의 원칙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우든이 살고 있는 콘도는 이러한 그의 삶을 잘 설명해준다. 우든과 같은 전설적인 감독이 대저택에서 살지 않고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우든 그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UTDTimes.com  / B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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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시민들에게 90년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NBA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센터 데이빗 로빈슨이라고 말할 것이다. '해군 제독'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그가 주목받는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주 오래 전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잡지에는 데이빗 로빈슨이 소개됐다. 이 잡지는 '왜 모든 사람이 데이빗 로빈슨을 존경할까?(Why everyone looks up to David Robinson)'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낸 바 있다. 그 잡지와 다른 언론 매체에 소개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


로빈슨은 피플 매거진(People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일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심으로 그 일을 하라'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로빈슨은 이처럼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그러나 워낙 유명 스타라 그의 '선한 일(good work)'은 쉽게 노출된다. 그가 샌안토니오 빈민가 지역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 5백만 달러를 헌금한 일을 비롯해 많은 기관에 자신이 번 거액의 연봉의 상당액을 사회에 환원한 일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로빈슨의 인생에서 최우선은 예수님과 가족이다. 그 다음이 농구다.


로빈슨은 자신의 세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 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백만장자이지만 그의 순수한 열정은 남다르다. 데이빗 로빈슨 재단을 설립해 편부모 가정과 불우가정을 돕고 있는 그는 마태복음 514절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세상의 빛이 되길 원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태복음 514)


로빈슨은 초등학생 중 문제아
94명을 뽑아 학교에 계속 다니면 대학까지 학비를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현재 94명 중 90명이 고교 졸업반이다. 로빈슨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교 시절 운동선수로는 드물게 SAT시험(미국의 수능 시험)에서 1300점 이상을 받았던 그는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배운 후 눈빛이 빛날 때 희열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로빈슨의 빛이 되기 위한 사역은 농구경기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동료들이 신앙은 현실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동료들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또한 그들이 영적인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항상 먼저 달려가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에 감사


로빈슨은 하킴 올라주원
, 샤킬 오닐과 함께 NBA의 최고 센터중의 한 명이다. (필자주: 90년대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저는 달리고 점프하고 블락샷을 하고 덩크슛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로빈슨이 하나님 앞에 낮은 자가 된 것은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91 68일 일어났던 사건 이후 그는 하나님께 붙잡힌 자가 됐다. 이날 로빈슨은 '챔피언스 포 크라이스트(Champions for Christ)'의 한 목사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데이빗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나요?(목사)

“물론입니다.(데이빗)

“기도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시지요.(목사)

“하루 세 번 식사할 때 기도합니다.(데이빗)

“성경을 읽는데 얼마나 시간을 보내나요?(목사)

.......”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와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요? 그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하지 않나요?(목사)

 


로빈슨이 이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에 실제로 다가오셨다고 회상한다. 이 전의 삶은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모든 영광을 가로챘다고 그는 고백한다.

 

 

성자 데이빗


 

96년 미국내 최고의 스포츠전문 매거진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지는 로빈슨을 '성자 데이빗'이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기사 내용은 ‘코트의 악동’으로 불리는 데니스 로드맨( 사진 왼쪽)과의 관계에서 로빈슨은 성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때 팀 동료이기도 했던 로드맨은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항상 기자들 앞에서 로빈슨을 비난했다. 그런데 로빈슨은 "로드맨은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형제로서 사랑한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로드맨은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SI는 보도했다.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의 글렌 로저스 기자는 로빈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는 진짜 크리스천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글: UTDTimes.com/박병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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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의 레슬러가
미국 대학 챔피언에 올라 화제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발이 없었던 앤서니 로블레스(Anthony Robles) 19(미국 기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대학 레슬링 챔피언 결정전 125파운드 경기 결승에서 상대선수 맥도너(아이오와대) 71 누르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발을 갖고도 하기 힘든 스포츠에서 외발로 챔피언에 오른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애리조나주립대에 재학 중인 로블레스는 고등학교 1학년 레슬링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의 표현처럼 형편없는 실력 소유자였다. 발이 없으니 레슬링에서 좋은 결과를 낸다는 자체가 헛된 욕망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금세 훌륭한 레슬러가 되었고 나날이 성장했다.  

실의에 빠졌을 그의 모친인 주디 로블레스 씨는 신이 너를 만드신 이유가 있다(God made you for a reason)” 말했고 앤서니는 곧이어 나는 아마도 레슬링을 하기위해 태어난 같다  믿었다고 한다. 앤서니는 이후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페이스북과 메일로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견뎌낼 있다고 했다. 그들은 당신의 존재로 우리에게 힘이 된다 글을 썼다고 한다. 모친과 이웃들의 사랑과 관심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어낸 것이다.

앤서니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 발이 없었다. 주디 씨는 제왕절개로 앤서니를 낳았을 발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주디 씨는 아이를 낳고 울었다.  하지만 아들이 미국 대학생 레슬링 챔피언이 되었을 주디 씨는 울지 않았다. 기쁨의 미소가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주디 씨는 아이를 낳았을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침내 그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아들이 챔피언이 말했다. [UTD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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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영 선수 나탈리 뒤 트와는 왼쪽 무릎 아래로 발이 없는 여성이다. 1984년 1월29일생인 뒤 트와는 2001년 2월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영 선수였던 뒤 트와의 수영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듯했다. 뒤 트와는 그러나 수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수영 선수로 활약했던 뒤 트와는 2004년 장애인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받고 세계적인 선수로 주목받았다. 그런 그가 비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화제가 됐다.

뒤 트와는 지난 2008년 5월3일 스페인에서 열린 오픈워터 수영(바다, 강, 호수 등 야외에서 하는 수영 경기) 세계 선수권 10km 경기에서 4위에 올라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받았다. 장애인 올림픽 출전권이 아닌 비장애인 올림픽 출전권 획득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1위와 5.1초 차밖에 나지 않은 근소한 차이의 4위였다.

뒤 트와는 아프리카에서는 최고 수준의 수영 선수였다. 그는 비장애인 수영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을 한 바 있다. 뒤 트와는 2003년 올-아프리카 게임 800m 자유형에서 금메달, 아프로-아시안 게임에서 800m 은메달, 400m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뒤 트와는 올림픽 출전권을 받았던 2008년 5월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수영을 한 후에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울게 됐다. 비장애인 올림픽 출전은 나의 평생 소원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을 아깝게 놓친 바 있다.

절단되지 않은 오른쪽 발로만 킥한다는 뒤 트와는 그 때문에 장거리 수영 경기에서는 발에 쥐가 자주 난다고 한다. 양쪽 발을 조화롭게 사용하지 않으면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는 수영 경기에서 뒤 트와의 선전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뒤 트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10K 마라톤 수영 경기에서 16위에 랭크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원망보다는 미래를 위한 준비에 열심이었다. 뒤 트와의 인생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시련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뒤 트와가 한 발로 올림픽 수영 경기에 나가 16위에 랭크됐다면 우리도 일어설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고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어려움에 빠질 때 함께 한다. 뒤 트와가 종교인인지 아닌지는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분명 신적인 도움이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때 그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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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18 April, 2007
Wednesday 18 April, 2007 by jackace 저작자 표시비영리

미국에서 동네농구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My fault(내 실수다)’라는 말이다. 자기가 잘못해 상대편에게 공을 넘겨줬다는 표현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신선했다. 대부분 ‘네 탓이야(It’s your fault)’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있다가 이러한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우리의 뇌는 ‘남의 탓’을 찾는 데 훈련이 잘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건전한 비판 의식은 좋은 것이지만 ‘나는 잘못이 없다’는 이유를 찾고자 도가 지나치게 ‘남의 탓’을 하면 화목이 깨지게 되어 있다. 미국이 ‘남 탓’을 전혀 하지 않는 나라는 아니다. 미국도 LA 폭동 당시 모든 잘못을 한인 사회에 뒤집어씌우려고 시도했고 몇 년 전 조승희 사건이 터졌을 때도 굳이 ‘Seung Hui Cho’를 ‘Cho Seung Hui’로 사용하며 미국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려는 숨은 의도가 엿보였다. 또한 이 학생을 무조건 정신병자로 몰아서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순수한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승희야, 네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못해준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의 여학생 편지와 ‘한국인이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다’는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미국의 시민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니던 교회가 미국 교회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런 불운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이 사회 모든 구성원의 책임입니다”라고 한국인 교회 교인들에게 말을 해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남의 일이지만 ‘내 탓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을 둘러보게 되어 있다. 내 자녀들에게 내가 잘 못한 것은 없는지 이 아이들이 부모와 충분한 대화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네 탓이야’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까지의 삶과 똑같이 살게 될 것이다.

NBA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의 입 모양을 잘 보면 ‘마이 폴트(my fault)’라고 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 친화력이 좋음을 알 수 있다. ‘마이 폴트’라고 하는 이유는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팀 동료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니 안심해라’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동료를 위하는 마음인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화목케 하는 바람직한 일이다. ‘유어 폴트(Your fault)’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행복해 하지 않는다.

‘마이 폴트’라고 말하며 ‘죄의식’에 빠지자는 말이 아니라 ‘마이 폴트’ 발언으로 동료를 행복하게 해주자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그건 내 탓이야. 미안해.(That‘s my fault. I am sorry.)’라고 말한 후에 반응을 보면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를 존경하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정, 직장, 단체 등에서 ‘저건 내 탓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집단의 구성원은 행복하다. 자괴감을 느끼고 ‘내 탓이야’라고 하자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으로 저건 내 탓이야라고 하자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네 탓이야’라고 프로그램이 된 CPU(뇌)가 자동 부팅 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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